김성헌 도미자 이상수 정연은
글 : 김성헌
(학술평론 위원장, M&C 예술연구소 소장)
한국 미술시장의 출발을 간단히 살펴보면, 1913년 서예가 해강 김규진선생에 의해 서울에 세워진 <고금서화관>이 우리나라 최초의 화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는 고종의 명을 받아 만들어진 <천연당사진관>이 1903년에 만들어져 있었고, 부설로 <고금서화관>이 뒤에 추가된다. 그곳에서는 사진과 표구를 겸하고 서예와 문인화, 동양화 등을 판매하였었다. 그리고 뒤이어 우경 오봉림 선생이 만든 <조선미술관>이, 지금의 표구사처럼 표구를 하면서 문인화, 동양화 위주의 작품을 판매하는 형태의, 독자적인 시설로 만들어졌었다.
해방 이후에는 <반도화랑>, <미도파화랑>, <동인화랑> 같은 여러개의 화랑들이 만들어졌는데, 한국미술을 외국에 알리려 <코리안 아티스트> 책자까지 만들었던 반도화랑은 1958년에 화재로 문을 닫고, 반도화랑의 운영자였던 박명자씨는 1970년에 <현대화랑>을 개관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시스템을 갖춘 한국 화랑의 제대로 된 출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도시, 부산!
이후 한국미술시장은, 성장과 침체기를 거쳐 <서울옥션>, <K-옥션> 등의 경매업체들의 설립과 <KIAF>와 <아트부산>...등의 아트페어들이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개최되었고, 2022년에는 세계적인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까지 개최되어 행사기간 단 5일 만에 6천억원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글로벌 미술시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규모를 가진 부산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아트페어들이 성공적으로 활발하게 개최되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 우리 부산은 새로운 트렌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도시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세계적인 게임산업 G-STAR, KIAF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트부산을 필두로 하는 아트페어들, 불꽃축제... 등이 시민의 힘으로 자발적으로 개최되고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우리 부산미협 작가들도 인지하고 동승해야 한다.
필자는 2010년 3월에 개관한 신세계 센텀 백화점의 VIP와 회원들을 대상으로, 미술품 컬렉션 강좌를 첫해부터 올해 2024년까지 15년 동안, 매주 화요일 2회씩 쉼 없이 하고 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기에는 결강들이 일부 있었지만) 그리고 또 필자의 미술창고와 연구소, 공공기관들에서도 컬렉션 강의를 다양한 분야와 계층을 대상으로 계속하고 있다. 수강하는 컬렉터분들과 미술품 운송과 설치를 하는 아트 트랜스 분들이 말하길, 그 어떤 도시보다 부산의 컬렉터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폭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면서 그 배후에 필자의 강좌들도 제대로 한 몫(?)한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미술품 구입을 해야하는 이유와 타당성을 인문학과 예술 그리고 영화까지 동원하여 이해하게 하는 필자의 노력에 위안을 주는 의미도 포함되었겠지만, 평균 한 달에 8회, 1년에 96, 10년이면 960, 15년이면 980회 가량. 그리고 신세계백화점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 갤러리, 미술관, 미술창고...등까지 따지면 1400회를 훌쩍 뛰어넘게 강의하고 있다. 이런 햇수의 대부분을 필자는, 오로지 미술컬렉션에 초점을 맞춰 강의를 진행한다. 그 결과, 그들이 어떤 작가와 작품을 원하는 가를 알게 되고, 그들의 인식과 세대가 바뀌는 것, 그에따른 트렌드의 변화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2024년 BFAA 이미지.
(출처 : KNN)
10년 전인 2015년에 세계적인 갤러리 페로탕(PERROTIN) 아시아 담당자가 ‘아트부산’ 기간에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들이 필자를 찾은 이유는,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페드로 모자를 쓴 한국 사람이 컬렉터들을 모시고 아트투어를 누비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국 부산에 어떤 흐름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들이 한국진출을 위해, 사전 답사를 하는 과정에 필자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페로탕은 2016년에 <페로탕 서울>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한국미술시장에 진출해서 순항 중이다.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그들이 찾아온 의도를 직감하고 탄식했지만, 그래도 세계 3대 갤러리 중의 하나인 페로탕이 찾아왔으니, 머지않아 부산 미술계와 작가들에게도 어떤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위안 아닌 위안을 하며, 저평가된 작가발굴 등 필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심화시키며 나름의 준비를 그때 이후 하고 있다.
미술협회 소식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도 그 준비들 중의 하나인데, 벌써 20회가 넘게 글을 올렸다. 그 글들에서 필자는 충심으로, 예술의 진정성을 찾고자 하는 컬렉터들이 어떤 작가와 작품을 연구하는지, 부산작가들은 어떤 것을 중점해서 알아야 하는지...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미술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미협 소식지들의 5페이지를 꼭 확인 하시기 바란다.
덧붙여서 부산미술인이, 한국미술시장의 성장에 대응하여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 짧은 지면에 몇 가지 요약하며 글을 마친다.
첫째, 지역성과 글로벌 감각의 균형감을 갖춰야 한다. 지금은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는 시대다. 어차피 서울도,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에 있는 그들에게는 변방이다.
둘째, 지속적인 자기 계발/개발을 해서 새로운 개념, 기법, 트렌드를 익혀야 한다.
셋째, 각종 아트페어와 디지털 및 온라인 플랫폼을 참가하고 활용한다. 전시를 하는 작가는 미술시장에 드러날 수 밖에 없으니, 이왕할 거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김성헌
< 파이가 커지고 있다.
부산 작가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현: 부산미술협회 학술평론 회장
M&C 예술연구소 소장
2010년~현재, 신세계백화점 미술품 컬렉션 지도...
부산시/부산문화재단 공공예술 심의위원
전: 울산 산골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부산대학교 영상·IT 책임 교수... 등
윤영중의 自我意識
경희대 교수 도미자
1947년 양산에서 출생한 윤영중작가는 이 후 평생 부산에서 거주하였다.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졸업 후 교사생활과 함께 작품활동을 하면서 1982년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8년 국전 입상을 시작으로 1977년 Work현대미술전과 Point현대작가회전(77년~84년) 그리고 1979년 제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7번의 개인전을 끝내고 2021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꾸준히 自我意識과 無題라는 주제로 평생을 Canvas와 씨름하다 마지막 개인전을 광복동 BS갤러리에서 마치고 그 많은 작품들을 정리한 후 홀연히 세상의 끈을 놓았다.
작품제목 대부분이 “自我意識Self Consciousness”, “自我를 찾아서”, “無題Untitled” 시리즈가 많아 제목만으로도 그의 성격과 성품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의 제목이 위의 세 종류에 한정되어 있는 데 제1회 개인전부터 작품제목이 自我意識으로 시작된다. Canvas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면포나 갈베, 마대 등을 붙이는 데 헝겊의 올을 풀거나 찢을 것을 대비한 부분 아래에 유화나 아크릴물감으로 다시 바탕을 칠하므로 Canvas뒷 면에는 그 부분에 테라핀·린시드가 스며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계산된 물감위에 면포나 갈베의 올을 풀거나 찢어서 새롭고 자연스러운 공간을 연출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自我意識76-8>은 사이사이 올을 많이 빼다 보면 가는 레이스가 되기도 하고 하프의 가는 줄이 되어 손으로 튕기면 마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주 곱게 풀어낸 것도 있고 면포나 마대를 곱게 찢은 것도 있고, 아주 강렬하게 찢은 것도 있다. <自我意識78-1>에서는 가운데를 주욱 찢어 마치 잘 익은 무화과 과일처럼 작가의 속내를 내 보이고 싶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다.
개인전 1~2회때는 自我意識시리즈였다면 1992년 제3회 개인전에서는 올을 풀거나 찢지 않고 상큼한 봄날같은 밝은 물감과 혼합재료를 썼는 데 작가는 이 전시 시리즈제목을 모두 無題Untitled로 통일하였다. 그렇지만 감히 필자가 제목을 붙여도 된다면 하모니(harmony)로 붙이고 싶은 정도로 밝고 맑아 전작에 비해 작가마음이 많이 순화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무렵 제작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동료교사의 말에 의하면 “Canvas위에 두루마리 휴지를 엇갈리게 깔아놓고 그 위에 여러 가지 물감으로 색을 뿌리고 묻혀 시간이 흐른 뒤 휴지를 모두 떼어내고 다시 메꾸듯 채우듯하면서 세필로 자유롭게 뿌려서 신나는 기분을 나타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언어로 자신을 얘기하면
“나의 공간이란 ‘이것과 저것 사이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움직임과 현존성 그 자체’의 형상들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있는 찢는, 풀어헤친 움직임의 현재가 있는 공간에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아의식이다.”
도 미 자
< 귀거래사(歸去來辭) 24-2-1 >
95x65(cm) 한지 · 혼합재료
1982 신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학사)
1987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2013 동아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박사)
2000~2002 부산시립박물관소장 회화작품DB작성
2010『부산미협64년』발간 편집주간
2015『디지털 부산역사문화대전』미술부문집필
1978~2024 묵연회(서예), 대학미전, 부산시전, 연미전, 자오련전, 신라대동문전, 1958무술생전, 부산미술제, BFAA, 부산현대작가협회전 등 기획·초대전 50여회
현:경희대학교 한의학박물관 학예실장 및 겸임교수
한국미술협회, 부산미술협회, 부산현대작가협회회원
경희베가문화예술연구소 대표
부산문화재단 김종식아카이빙 연구선정팀
이상수
시각언어’란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색상’과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의 하나이다.
‘색상’을 눈에 보이는 일상적 표현으로 말해보면 어두운색과 밝은색, 진한 색과 연한 색, 초록색과 붉은색과 보라색과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들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형태’는 기호, 구도, 굵거나 투박하거나 가늘고 섬세한 선 들이며.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는 사물의 겉모습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서, 시각언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 따위와 정신활동의 모든 동기(motive)가 문자나 소리가 아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재현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다. 언어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인간’(Homo sapience)들이 제대로 모를 뿐이다.
하지만 생존의 차원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시각언어를 가지고 있는 생물은 ‘사람’이 유일할 것이다. 물론 사람의 입장에서의 판단일 뿐이다. 밝히지 못한 자연과학의 현상은 무궁무진하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언어와 시각언어는 시간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지역이 그 지역만의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독자성 있는 시각언어를 가지게 될 자격이 있다.
서울을 제외하면 부산은 한국의 근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사회적 변혁을 많이 겪은 도시이다. 지리 혹은 지형의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부산은 대한민국의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특출난 곳이다. 당연히 부산만이 가지는 시각언어가 있을 것이다.
한 지역의 특수성과 개성이 작가의 예술적 감성과 창작적 의욕으로 결합할 때 그 차별성은 더욱 빛이 난다. 부산 현대미술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변모의 흐름은 한국 현대미술 전체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만의 시각언어를 찾으려는 시도는 늘 유효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산사람이니까.
그것은 곧 부산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찾는 행위는 통찰력과 자각심을 길러 건강한 삶을 지속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부산현대미술 100년의 역사와 그를 아우르는 21세기 부산미술이 보여주는 시각언어에 대한 이해와 탐구는 이런 점에서 주목하고 게을리 하면 안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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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2019 4회 개인전(이듬갤러리, 부산) / 1998~2015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관
2019 한·미얀마 레지던시 작가 교류전 - Instinct let be(미얀마 인레 호수)
~2021 울주군 서생 예술촌 갤러리 ‘창꼬’ 기획초대전 전시 서문 작성
2022 아시아예술협회 한·아세안 메타버스 교류전(베트남, 라오스)-정보통신부,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징검다리커뮤니케이션(주)
2023 “남장 김종식 중구 구민들과 함께 그 생애를 이야기하다.” 원고 및 발표
부산원로작가 강선보 작품 연구 및 도록 발간
2024 라오스국립미술원 프로젝트 부산문화재단 레지던시 활성화사업 선정 아시아예술협회,
라오스문화관광청 2024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 연구 김종식 연구(부산문화재단)
정연은 (학술평론분과)
필자의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애창곡은 가수 남인수(1918~1962)의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었다. “…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우네 울어/ 이별의 부산 정거장 …” 노래야 즐겁게 부르지만 6.25 전쟁으로 인한 피난살이, 판잣집, 애틋한 이별을 노래한 눈물의 서정시이다.
필자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 전쟁을 맞아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다. 아버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소년병들이 전쟁터에서 이겨내야만 했던 가장 큰 고통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배고픔이었다고 한다. 정규병들도 배를 채우기 힘든 형편이었을 테니 당연히 군사적 가치가 떨어지는 소년병들에게는 식량보급이 턱 없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거듭되는 패전으로 인해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밀려 부산에 도착해서는 ‘이제 이렇게 굶어죽는가 보다’하고 생각했는데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부산 사람들이 아버지를 거두어 따뜻하게 보살펴 살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아이고! 저거 불쌍해서 우짜~노!”라고 측은하게 여기며 자신들에게도 귀했던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누어 어린 소년병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젊은이와 부산 아가씨의 이별 장면이 애틋하게 묘사되어 있는 노래이다. 아버지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판잣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이 자신의 것처럼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애틋한 심정으로 불렀으리라. 물론 이러한 심정은 필자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아온 모두가 같았을 것이고, 그래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라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피난민들이 보금자리였던 부산의 명물 ‘판잣집’이다.
부산 최초의 전업(專業) 화가인 양달석(梁達錫, 1908~1984)은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전쟁의 상처를 그림으로 나타낸 화가이다. 이 작품 〈판자촌〉(49.1 x 34cm, 한지에 담채, 1950년, 부산시립미술관)은 전쟁 당시 척박했던 피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먼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푸른색으로 처리하면서 디테일을 없앴다. 이것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의 밤을 보는 작가의 심정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마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밤의 분위기를 푸른색으로 처리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좁은 집안을 피해 거리에 나온 사람, 가족과 같이 집안에 있는 사람, 불만 켜진 빈집들은 여름밤을 보내는 피란민들의 힘겨운 일상을 대변하지만 작가는 어려움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다. 방마다 가득한 노랑 불빛은 피란민들의 삶에 대한 의지, 곧 행복했던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리라.
양달석의 〈판자촌〉뿐만 아니라 피난 시절 부산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은 유난히도 판잣집을 많이 그렸다. 그런데 어느 그림에서나 그림 속에 나타난 판잣집들은 비참하거나 고통스럽게 보이지 않고, 정감이 넘치는 아기자기한 모습니다. 지나간 추억이라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피란민들을 바라보던 부산 사람들의 따뜻한 감성이 화가들의 붓끝을 통해 전해진 까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양달석의 〈판자촌〉은 인간이 인간 가치를 발휘한 증거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판잣집이 가장 많았던 부산은 항구도시의 특성상 예전부터 다른 지역과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나 낯선 문화에 대한 경계가 적은 편이다. 또 가족이나 친척을 먼 타지로 내보내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부산 사람들의 눈에는 전쟁 중 타지로부터 피난 온 이방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시(戰時)의 팍팍한 삶에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는 희생을 전제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긍정적 희생을 논한 신실용주의 철학자가 있다. 미국의 현대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McKay Rorty, 1931–2007)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행위를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이라고 하며 이것이 인간의 최고 가치와 덕목이라고 하였다. 로티는 어느 거창한 철학이론보다도 정작 실제 상황에서 발현되는 이러한 실행, 즉 긍정적인 연대감의 발휘가 훨씬 더 실질적이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난민들에 대해 연대감을 발휘한 부산 사람들의 너그러운 포용력은 참혹한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것이고, 이것은 바로 로티가 말한 인간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 것이라 하겠다.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나 〈판자촌〉은 실로 큰 힘을 발휘한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전쟁의 후유증을 견디게 하였으며 조국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전쟁 후의 메마른 가슴을 달래주었다.
정연은
< 양달석의 ‘판자촌’과 ‘이별의 부산정거장’ >
2023년, 베스트셀러 책 ‘친절한 미술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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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평화방송 “화요명화산책” 진행
동아대학교 외래교수